福家 복 있는 가족 공동체

열린문 교회 

  • 본문: 시편 1편


                                     

2023년 열린문 교회 청년부들과 함께

<암반수>

사랑하는 열린문 교회 가족 여러분, 3년 전 갑상선 수술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되어 뵙고 다시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저희 부모님의 칠순을 기념하며 그 동안 저희 부모님과 저희에게 가족이 되어 주신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잔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또한 저희가 12년 동안 홀튼에서 선교사의 마음으로 사역하다가 새로운 발령을 받아 임지를 옮기게 되는 과정 속에서 안식월을 허락해주셔서 저희 삶의 큰 변화를 여러분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감리교회는 파송제도로 비숍과 캐비넷의 요청에 따라 사역지를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3월 예상하지도 못한 연락을 받고, 그 동안의 사역을 갑자기 정리하고 가족이 된 모든 네 교회 성도님들을 뒤로 하고, 6월 3일 새로운 사역지인 보스턴 근처의 Cape Cod로 이사하고 남편의 새로운 교회에 인사드리고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7명의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너무도 큰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을 저희 교회 성도님들과 마을 사람들을 통해 받았습니다. 이별조차도 너무 아름다워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돌아보는데 어떻게 민족과 인종을 뛰어 넘어 이런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 영어도 잘 안 되어서 계속 발음 실수를 하는 저인데 어떻게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게 있는 단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아주심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바로 이 곳 열린문 교회 가족들과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영적 육적인 부모 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보고 배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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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친정에 와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보양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시는 지하 깊은 곳에 몇 천년 모인 암반수를 통해 시원하게 샤워도 하고 맛있게 물을 먹으면서 열린문 교회 공동체가 제게 암반수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말씀보시고 기도하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늘 도전을 받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몇 년동안 연락하지 못해도 너무도 다른 사역을 하고 있어도 제 삶의 원동력 사역의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시편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어떻게 열린문 교회의 복 있는 삶이 저의 삶과 연결되었는지를 나누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Theopoetry)>

아버지께서 매일 아침 시편 한 편을 읽으시며 저에게도 권하셨는데 커서 큰 고통과 시련을 만나기 전까지 시편이 그렇게 와닿지 않아 건성으로 읽거나 눈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의 우울증, 홍해 바다 앞에 선 경험, 갑상선 수술 등 삶의 고난 앞에서 시편이 왜 이렇게 와 닿던지요. 하루 종일 시편을 들으면서 무너지지 않고 이긴 적도 있습니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은 위대한 시인이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말씀은 바로 음성이며, 음파가 있는 노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노래이기도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은 아모스 와일더의 말처럼 'Theopoetry(하나님의 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 시편을 '성경의 기도서'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기도할지 모를 때 우리는 시편으로 기도합니다.

시편은 150편의 기도 및 찬양으로 이루어진 책으로 다윗, 솔로몬, 아삽, 고라 등 여러 음악가들이 모세 시기(기원전 15세기 경)부터 바벨론 포로기 이후(기원전 6세기)에 이르기까지 1000년에 걸쳐서 완성되었습니다. 150편의 시편 중 73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 통일된 모음집으로 엮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본을 보여줍니다. 찬양, 탄식, 감사, 지혜, 메시아 예언 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크게 찬양과 탄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편에는 유독 '복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원어인 '아쉬레이(אַשְׁרֵי)'는 단순한 세속적 행복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받는 삶,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는 상태가 참으로 복된 상태이며 그것이 진짜 기쁨이라고 선언하는 단어입니다. C.S 루이스는 기쁨이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라 했고, 헨리 나우웬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머무는 것'이 기쁨이라 했습니다. 존 파이퍼는 그 관계야말로 우리에게 영원하고 깊은 만족감을 준다고 고백했습니다.



<나의 시편: 행복한 가정(福家)>

'복'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관계적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와 가까이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 안에서 그 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년 여름 저희 가족은 내적으로 하나의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스럽고 아픈 가운데에서 휴가를 내어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놀러간 놀이동산에서 ‘복가(福家)’라는 한자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함께 보트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내려오면서, 하나님께서 회복시킨 이 가정의 복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마음을 담아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많은 복들을 7가지로 모아 이 시를 고백합니다.

행복한 가정(福家) - 강영은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만 말하는 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시 1편, 112:1, 119:1-2)

 

복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피하는 자입니다. (시 2:12, 34:8)

 

복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와 동행하는 자입니다. (시 84:4-5, 128:1-2, 144:15, 146:5)

 

복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빨리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주 안에서 연합하여 걷는 자입니다. (시 133:1)

 

복 있는 사람은 

허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주께서 허물을 가려주시는 자입니다. (시 32:1-2, 127:5)

 

복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 세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입니다. (시 89:5)

 

복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의 원칙에 따라 사는 자가 아니라 

주를 닮아 정의와 공의를 지키는 자입니다. (시 106:3)

 

허물 많은,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이 가정에 

주님이 계시니 우리는 행복한 가정입니다.

 

성경 읽기 운동에 동참한 방과후 활동 아이들, 요양원 분들, 그리고 교인들

<7가지 복 있는 삶>

오늘 노래한 7가지 복 있는 삶의 비밀을 살펴보며, 어떻게 우리 열린문 교회 성도님들의 삶과 저의 삶, 그리고 미국 교회 가족들의 삶이 하나로 연결되었는지 나누고자 합니다.

  • 첫째,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복 (시 1:1-2) 

  • 성경은 성령의 호흡이 머무는 살아 있는 말씀이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성경을 읽고 쓰며 깨달은 것을 묵상하고 나누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변함없이 주야로 성경 다독과 큐티를 병행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존경합니다. 열린문 교회 성도님들 역시 하루 두 시간씩 새벽과 밤에 주님을 찾으며 말씀과 기도로 제단을 쌓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늘 큰 힘을 얻습니다. 이 저력은 저희 일곱 식구에게도 이어져, 16살 큰딸부터 6살 막내까지 아침마다 성경을 읽습니다. 식탁에서 아이들이 꺼내놓는 순수한 묵상들이 때로는 제 설교의 주제가 되곤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미국 사역지에서도 80세 교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온 교우가 성경 읽기에 동참하여, 평생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눈물로 은혜를 간증하는 감격적인 연합을 목도했습니다.

  • 둘째,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복 (시 34:8) 

  • 고난이 없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이 진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목회자 자녀로 자라며 제 안의 고난과 우상은 '교회 건물에 사람을 채우는 가시적 부흥'이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전도주의였는지 광야에서 깨달았습니다. 12년 동안 홀튼의 시골 마을에서 다섯 아이를 키우며 공부하고 결국 네 교회를 섬기는 생생한 고난의 과정 속에서, 교단의 신학적·정치적 분열을 몸소 겪으며 진짜 부흥을 배웠습니다. 진짜 부흥은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내 주변의 상처 입은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을 피난처로 삼도록 돕는 일입니다.   

  • 네 교회 연합 리더십


  • 셋째, 주님과 동행하는 순종의 복 (시 128:1) 

  •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걷는 삶을 저는 열린문 교회 성도님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12년 동안 부모이자 조부모가 되어준 성도들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한 번에 수많은 장례를 치르는 듯한 단절의 슬픔에 몇 달을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그리시는 거대한 사랑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보며 다시 행복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우리 가정을 향한 사랑으로 새로운 임지의 성도들까지 품게 하셨습니다.


  • 5월 31일 연합 송별 예배

  • 넷째,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연합의 복 (시 133:1) 

  • 조금 늦게 가더라도, 멀리 가지 못하더라도 '함께 가는 삶'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로 안부를 물으며 신앙의 동고동락을 전개하시는 여러분의 기도가 그 증거입니다. 이 연합은 미국 사역지 네 교회 성도들의 기적적인 연합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5월 31일 고별 예배 때, 평소 하나 되기 어렵던 네 교회의 성도 126명이 한자리에 모여 기쁨으로 성찬과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있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주님은 갈등과 긴장을 넘어 진정한 화해와 은혜의 연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 다섯째, 주의 은혜로 죄가 가리워지는 복 (시 32:1) 

  • 저희 원가족만 보더라도 허물 많은 이들이 모여 부딪치고 아파할 때가 많았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죄는 관계의 깨어짐을 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허물을 보혈의 은혜로 덮어주셨고, 오히려 영광스러운 간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홀튼 사역을 마무리할 때 마을 주민들이 보낸 애정 어린 이메일, 도서관의 기념 도서 기증, 교인들의 눈물 어린 카드를 받으며, 허물 많은 우리 가정이 과분한 은혜로 덮이는 거룩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 South Yarmouth  UMC (남편 교회)

  • 여섯째, 절망 중에도 선포하는 찬양의 복 (시 89:5) 

  • 다윗의 탄식시들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막을 내립니다. 내 절망의 환경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크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신뢰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관광 도시이자 낯선 환경으로의 이동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전학을 가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매일 밤 두려움을 거두는 기도를 하며 먼저 찬양을 선포했습니다.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준비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캄캄한 광야에서 믿음으로 드린 찬양을 주님은 기쁘게 받으셨고, 새로운 임지의 교우들은 상상 이상의 뜨거운 환대로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 일곱째, 공의와 정의를 따라가는 사회적 성화의 복 (시 106:3) 저는 늘 한 가지 숙제를 안고 고민해 왔습니다. '어떻게 나의 골방 속 개인 경건이 내가 발딛고 선 삶의 자리인 사회적 경건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본문에서 말하는 '정의(미쉬파트, מִשְׁפָּט)'와 '공의(체다카, צְדָקָה)'는 단순히 세상의 법적 기준을 지키는 소극적 도덕성이 아닙니다.

    • 원어적 의미: '미쉬파트'는 사회적 약자(과부, 고아, 나그네)의 권리를 보호하는 실천적 행동이며, '체다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부터 흘러나오는 공동체적 책임입니다.

    • 문자적 의미: "항상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삶의 특정한 순간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대변한다는 뜻입니다.

    • 역사적 맥락: 이 시편은 이스라엘이 광야와 포로기라는 척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만의 안위를 구하던 배교의 길(넓은 길)을 거부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자가 진짜 행복한 자(아쉬레이)임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기독교는 본질상 '사회적 종교'이며, 복음의 은혜를 개인의 내면에만 가두는 것은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 골방의 경건은 반드시 내 가족, 이웃, 그리고 지역 사회의 아픔을 돌보는 사회적 성화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 말씀처럼, 참된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그 행함으로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말로만 사랑한다 하고 형제의 헐벗은 궁핍을 외면하는 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 실천적 사랑과 성화의 길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며,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평생의 영광스러운 숙제입니다.






<루블랭 가족(Roublin Family)>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목회자의 길을 걷다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고, 정신적 번뇌 속에서 귀를 자른 후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습니다. 버림받은 듯했던 그의 고독한 생의 마지막을 조건 없이 지켜준 이들은 그가 묵었던 여관의 주인 가정이자 평범한 우체부의 가족이었던 '루블랭 가족(Roublin Family)'이었습니다. 빈센트는 그들의 따뜻한 영접에 감동하여 그들의 모습을 26점의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영웅들이 아니었지만, 깨어진 화가 빈센트의 내면에 숨겨진 마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삶을 내어준 진짜 영웅들이었습니다.

열린문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까?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지식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지식은 반드시 삶을 변화시키는 성화와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언하며, 우리를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여 마침내 이 땅에서 사랑을 수행하는 거룩한 존재로 빚어 가기 때문입니다.

제게 이곳 열린문 교회는 지친 영혼의 노래를 다시 찾게 해 준 영적인 '루블랭 가족'이었고, 지치지 않는 사역의 원동력이 되어준 '암반수'였습니다. 이제 이 과분한 복을 받은 자로서, 저와 저희 일곱 가족은 새로운 임지인 케이프코드에서 그곳의 소외되고 깨어진 이들을 품어주는 또 다른 루블랭 가족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고난 중에 주를 피난처 삼고, 아프더라도 지체와 연합하며, 삶의 자리에서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는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한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 있는 열린문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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